와이로(蛙利鷺)의 유래
(최고)
고려 말 학자인 이규보는 과거에 몇 번 낙방 후 초야(草野)에 묻혀 살었다.
이규보 집 대문에는
唯我無蛙 人生之限(유아무와 인생지한)는 글이 붙어있었다.
ㅡ "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 이다."ㅡ
어느 날 암행나간 임금이 이규보 집 대문 글을 보고 “도대체 개구리가 뭘까?”
궁금하여 주인에게 묻자 그 뜻을 들을 수 있었다.
옛날, 노래 잘하는 꾀꼬리에게 목소리도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
'3일 후 백로(白鷺)를 심판으로
노래 시합을 하자'고 제안했다.
꾀꼬리는 어이 없었지만 실력을 자신했기에 시합에 응하고.
3일간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 했다.
그런데, 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 없이 돌아다니며
개구리를 잡아 백로(白鷺)에게 주고 뒤를 부탁하였다.
약속한 날 꾀꼬리와 까마귀는 노래 한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(白鷺)의 판정을 기다렸다.
꾀꼬리는 승리를 장담했지만 승리는 까마귀가 되었다.
개구리 뇌물을 먹은 결과다.
이때부터 와이로(蛙利鷺 - 개구리로 백로마음을 잡다) 란 말이 생겼다.
와(蛙) : 개구리 와. 이(利) : 이로울 이. 로(鷺) 해오라기 로. 백로 로.
그 말을 들은 임금은 李奎報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함을 알고,
자신도 과거에 몇번 낙방했는데 며칠 후 임시과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올라가는 중이니 당신도 응시해보라고 거짓말을 한 후.
궁궐로 돌아와, 임시과거령을 내렸다.
과거날, 이규보도 단상에 붙은 시제가 “唯我無蛙 人生之限”
임을 보고 궁궐을 향하여 절을 한 후 응시하여 장원급제(壯元及第)하였다.
와이로(蛙利鷺/唯我無蛙人生之恨)란 말은 고려후기에 나온
것이다.
좋은 글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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